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1심 무기징역이 선고된 뒤, 우리 사회의 반응은 다시 선명하게 갈렸다. 누군가는 오랜 분노가 풀렸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형량의 무게와 정치 현실을 걱정한다. 한 사건을 바라보는 마음이 이토록 쉽게 갈라지는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붙들어야 할까. 세상의 일은 대개 한 문장으로 판결하기에 너무 복잡하고, 우리의 지식과 판단은 언제나 제한되어 있다.
분노가 마지막 판단이 될 수는 없다
정치적 갈등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먼저 정죄하고 싶어진다. 자신이 지지하는 쪽의 잘못은 작게 보고, 반대편의 잘못은 모든 것을 설명하는 증거처럼 여긴다. 그러나 정의를 바란다는 마음과 타인의 파멸을 즐기는 마음은 다르다. 법의 판단은 책임을 묻는 사회의 필요한 과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한 사람의 인생과 영혼까지 재단할 자리에 서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불의에 눈감지 않되, 분노가 양심을 대신하게 두지 않아야 한다. 정의를 구하는 마음에도 긍휼과 절제가 필요하다.

세상의 심판 너머에도 회개의 문은 열려 있다
법정의 판결과 하나님의 구원은 서로 다른 차원에 있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고, 사회는 그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어떤 실패와 어떤 어둠도 하나님의 은혜가 닿지 못하는 곳은 없다. 감옥이라는 가장 폐쇄된 공간에서도 사람은 말씀 앞에 설 수 있고,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돌아볼 수 있다. 회개는 형벌을 피하기 위한 변명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더 이상 속이지 않는 일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회개를 대신 선언할 수 없지만, 누구도 은혜 밖에 있다고 선언할 수도 없다. 복음은 인간의 실패보다 하나님의 자비가 더 깊다고 선언한다.

영원한 승리는 정치의 결과에 달려 있지 않다
정치 권력의 흐름은 빠르게 바뀌고, 오늘의 승리와 패배도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적 결과에 마음의 평안을 걸어 둔 사람은 늘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이 붙드는 승리는 다른 곳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의 불의와 죄가 마지막 까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부활은 절망이 끝이 아니라는 약속이다. 이 믿음은 현실을 외면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책임 있게 진실을 말하고, 약한 이를 돌보며,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게 한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신앙은 도피처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

평안은 십자가에서 온다
우리는 모든 정치적 사안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모든 판단의 결과를 통제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한계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은 정의를 위해 기도하고, 잘못에는 책임을 묻고, 누구에게나 회복의 길이 열리기를 바랄 수 있다. 우리의 평안은 세상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서 얻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 안에서 약속된 영원한 생명에서 온다. 그 평안을 붙들 때 혼란한 현실 속에서도 마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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