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나의 존재는 확률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다


인간의 존재를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확률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종종 ‘내가 태어날 확률’이라는 말을 듣는다. 숫자는 놀라운 희소성을 보여 주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숫자가 나라는 존재의 의미와 근원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존재를 하나의 계산 결과로 환원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왜 지금 이 삶을 살고 있는가.

존재는 한 번의 만남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나의 존재는 부모님의 만남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부모님이 살아온 시간, 조부모와 그 이전 세대의 만남과 선택, 수많은 이별과 우연한 사건, 누군가의 결단과 희생이 얽혀 오늘의 나에게 닿았다. 그 긴 흐름 가운데 하나라도 달랐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존재를 단순히 수정의 순간이나 계산 가능한 확률 하나로 설명하는 일은 너무 피상적다. 인간의 삶은 셀 수 없이 많은 관계와 시간의 결을 품고 있으며, 그 모든 역사를 숫자로 압축할 수는 없다.

세대를 잇는 존재의 역사
Photo by Roberto Nickson on Unsplash

숫자를 다룬다고 존재를 아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확률을 계산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을 얻었다. 그것은 분명 유익한 도구다. 하지만 확률을 조금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존재 자체를 이해했다고 여기는 것은 오만이다. 우리는 자기 몸이 어떻게 완전히 작동하는지조차 다 알지 못하고,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온전히 알지 못한다. 숫자는 현상의 일부를 보여 줄 뿐 존재의 깊이를 대신하지 못한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난 만큼,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도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숫자와 확률의 한계
Photo by Nick Hillier on Unsplash

우연처럼 보이는 삶 속의 섭리

우리에게는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과 사건이 많다. 어떤 길을 선택한 날,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을 만난 순간, 어려움 속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았던 경험이 쌓여 삶의 방향을 만든다. 사람이 모든 이유를 알 수 없기에 그것을 단순히 우연이라고 부르기 쉽다. 그러나 신앙은 그 이름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과 관계 속에서도 일하시며, 한 사람의 생명을 헛되이 다루지 않으신다. 나의 존재는 계산 끝에 남은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부르심을 입은 존재다.

하나님의 섭리와 넓은 우주
Photo by Chan Hoi on Unsplash

존재의 은혜를 기쁨으로 살아가기

나의 존재가 확률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창조된 것임을 기억하면 하루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오늘도 살아 있다는 사실, 사랑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이 감사의 이유가 된다. 삶을 내 뜻대로 완벽하게 계산하고 통제하려는 마음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 대신 주어진 생명을 기쁨으로 누리고, 만나는 사람을 귀히 여기며, 하루의 작은 은혜도 놓치지 않게 된다. 존재의 근원을 아는 사람에게 감사는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고백이 되고, 그 감사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사람에게 주어진 복이 된다.

감사로 맞는 새로운 하루
Photo by Dawid Zawił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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